top of page

제주 4.3 사건 바로 알기(1) - 군인

이번 글은 조금 새로운 장르입니다. 이번 역사 시간에 제주 4.3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문학 작품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4.3 사건에 대한 내용을 더욱더 넓은 관점으로 다루고 싶었기에 이 소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이 조금 있으면 다가올 4월 3일에 일어날 4.3 사건에 대해 조금 더 친숙해지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어서 다음 달은 4.3 사건에 대해 깊이 들어가 볼 예정입니다.

군인

오랜만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힘든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며칠 만인가. 머리 위에서는 밝은 해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햇빛을 비추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면서, 한숨을 쉬었다. 오랫동안의 고생이 다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바스락." 항상 보던 그 노루인 줄 알고, 심심함을 풀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거기에서 내가 본 것은 내가 기대한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였다.

...

눈을 감아보아도 낮에 그 일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탕. 탕. 탕." 그렇게 큰 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여느 때와 같이 창틀에 걸터앉아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집 밖에서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나와라, 창수야. 군인들이 우리 마을로 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등 떠밀려 대문 밖을 나왔다. 아빠는 항상 나에게 군인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치라고 하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군인이 뭔지도 모른다.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 도깨비라고 친구들과 아빠가 말해주셨다. 정말 못생기고, 보기 싫을 것 같다. 도깨비라니. 아빠가 잠을 못 잘 때마다 들려주던 도깨비 이야기를 생각하면 진저리가 나는데, 실제로 도깨비를 보면 얼마나 싫을까!

"탕. 탕. 탕." 계속 귓속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대문을 나선 후, 항상 아침마다 보던 그 산으로 올라갔다. 눈도 쌓여있고, 다리도 아팠지만 재미있었다. 그런데 왠지 아빠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면 혼날 것 같아 그러진 않았다. 산 중턱까지 올라오니, 나에겐 크기만 하던 우리 집도 엄청 작아 보였다. 아빠가 말했던 그 '군인들'도 더 이상 우리를 쫓아 오진 않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걷는 것은 아빠와 나에게도 오랜만이라, 우리는 천천히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거의 정상이 보일 듯하였다. 그 때, 묵직한 힘이 나를 나무 쪽으로 밀쳤다. 그건 다름 아닌 아빠였다. "창수야, 아빠 말 잘 들어. 군인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어. 어떻게 우리를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도망쳐. 지난번에 재원 삼촌이랑 갔던 동굴 기억나지? 거기로 가있어. 아빠도 곧 갈게."

대답도 하기 전에, 아빠는 산 위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었다. "탕. 탕. 탕." 나는 깜짝 놀라 등에 매고 있던 봇짐을 떨어뜨렸다. 먹다 남은 감자와 놋그릇 몇 개가 언덕을 굴러가고 있었지만 내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분명히 이상한 일이 생겼으니 도망가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난번에 재원 삼촌이랑 갔던 동굴 기억나지? 거기로 가있어. 아빠도 곧 갈게.' 갑자기 머릿속에서 아빠의 말이 생각나며, 온몸의 긴장감이 풀렸다. 언덕 아래까지 내려간 그릇 몇 개도 들고 가고 싶었지만, 감자만 몇 개 챙겨 지난주에 갔다 온 동굴로 빨리 향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너무 춥고 외로웠다. 아빠와 말은 자주 하지 않았지만, 아빠와 함께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무슨 일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내 곁에 없었고, 나중에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언덕 몇 개를 더 넘고 나니, 동굴 입구가 보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입구가 돌로 더 가려져 더 좁아져 보였다. 들어가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재원 삼촌, 어렸을 때 자주 같이 놀았던 수빈이 형, 그리고 집 근처에서 자주 보던 아줌마, 아저씨들도 있었다. 내가 혼자 동굴을 들어오자 재원 삼촌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빠는 어디 갔니?"

"아빠랑은 나중에 여기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삼촌, 근데 나 아빠랑 헤어지자마자 엄청 큰 소리 들었어요."

"무슨 소리였는데?"

"뭐가 터지는 소리였어요. 장작 타는 소리가 엄청 커지면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내 말을 들은 삼촌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산을 올라갈 때 아빠의 얼굴과 똑같았다. ‘무슨 일이지? 조금 있으면 아빠는 올 건데.’ 조금은 이상했다. '왜 여기에 다들 모여있는 거지? 그 도깨비들 때문인가?' 산을 올라오느라 지친 나는 동굴 구석에 자리를 잡아 누어, 동굴 가운데에서 타고 있는 장작을 보며 아빠를 떠올렸다.

...

오랜만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힘든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며칠 만인가. 아빠는 아직도 올 생각을 안 하지만, 머리 위에서는 밝은 해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햇빛을 비추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면서, 한숨을 쉬었다. 동굴 속에서의 오랫동안의 고생이 다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바스락." 항상 보던 그 노루인 줄 알고, 심심함을 풀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거기에서 내가 본 것은 내가 기대한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였다.

두꺼운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맞나?'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것은 두꺼운 모자와 옷을 입고 있었고, 막대기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사람은 맞네.' 나는 그를 손으로 흔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몸은 엄청나게 차가웠고,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저기요?" 갑자기 그 사람이 움직이는 바람에 나는 돌에 걸려 넘어질뻔하였다. "괜찮으세요? 다치셨어요?" 계속 질문을 물어보았지만 그 사람은 대꾸조차 하지도 않았다. "어디서 오셨어요? 누구세요?" 표정을 보니 내가 하는 질문이 귀찮은 것 같았다. "도와드릴까요?" 아니다, 다시 보니 귀찮은 게 아니라 엄청 아파 보였다. 나는 바로 그 사람을 동굴로 끌고 오려고 하였다.

"건들지 마라, 꼬맹아. 우리 대한 군인들은 도움 같은 거 필요 없어. 우리들의 사명은 우리들이 지키고 실현시킨다." 갑자기 그 사람이 조용히 말했다.

"군인이 뭔데... 군인이요?" 순간 몸이 떨렸다. 나는 바로 그 군인의 옷을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동굴 쪽으로 뛰었다. 그 사람, 아니 도깨비는 엄청 못생기고 무서운 그것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몇 분 동안 그 도깨비를 보고만 있었다. 도깨비라고 해도 많이 다쳤는데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다시 그 도깨비를 보니, 그렇게 도깨비처럼 못생기고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냥 아빠, 재원 삼촌, 수빈이 형처럼 사람 같았다. 그렇지만 그 도깨비가 입고 있는 이상한 옷이랑 모자, 그 기다란 막대기는 여전히 이상해 보였다. '군인도 도깨비가 아니라 사람인가?'

그 생각을 마쳐 다하기도 전에 재원 삼촌이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빨리 동굴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뒤에 두고 동굴로 기어갔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동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여기 숨어있었군. 여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나오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작은 돌이 입구로부터 굴러들어 왔다. 그리고 몇 초가 채 지나지 않고 그 돌은 "펑"하고 내 바로 앞에서 터졌다. 지난번에 아빠랑 헤어졌을 때 들었던 그 소리보다 훨씬 컸다. 귀에서는 삐 소리가 계속 웅웅거렸고, 눈과 온몸은 따가웠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아까 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뭔가를 말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삼촌, 무슨 일이야?" 나는 크게 옆에 있는 삼촌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삼촌? 무슨 일이야? 다른 집 사람들도 온 거야? 민수형인가?" 민수형은 아닌 것 같았다. 그 형은 이런 장난은 치지 않는다. 눈 따가운 게 다 가실 때쯤, 입구에서는 또 다른 하얀색 연기가 들어왔다. "민수형, 그만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말이야." 그 하얀색 연기 속에서 눈을 뜨고 있으니,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기침도 계속하였다. "털썩." 뭔가 떨어지는,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삼촌이야? 이 연기 좀 없애줘요! 눈이 너무 아파요!"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내 눈은 쓰라렸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기침을 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동굴 바닥에 쓰러지듯이 엎어졌다. 머리는 너무 아팠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아빠는 언제 오는 거지? 아빠랑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밖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그 도깨비인가? 아닌데, 그 군인은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Tag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