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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에디터의 책장 2장: 관계는 봉제선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관계들이 존재한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맺어진 관계가 있나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도 있다. 아마 제일 대표적인 예로는 혈연과 친구관계, 혹은 연인관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들이 굳이 운명이나 사주인연에 연연하는 데에는 결국 자신이 예상하지 못하거나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에 대해 은연중에 갈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운명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막연히 만날거라 기대하는 인연보다는 내가 직접 엮어나가는 관계가 훨씬 더 끈끈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인연이라는게 생각보다 복잡하고 짜증나고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다는게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아직 “그땐 그랬지" 라는 말을 할 만큼 세월을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그 복잡하고 암울하다는 사회에 나가본 적도 없는 그저 여느 고등학생일 뿐이지만, 아마 그 짧은 시간 안에 무수히 많은 관계를 잇고, 끊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경험에서 얻은거라곤, 관계는 정말 터무니없다는 허무한 결론 뿐이였다. 나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도, 어린 사람들한테도, 그리고 동급생들에게서도 비난과 질타를 받아본 적이 있다. 왜, 다들 그런 경험 한번씩은 있잖아. 이유없는 미움을 받고, 납득하지 못할 이유들로 욕을 먹을때. 처음엔 ‘나댄다' 라는 말로 시작해서 ‘여우같다, 꼬리친다' 라는 말로 이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수위가 높아져 더 이상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들로 이어지는. 더 재밌는 점은, 나는 그 말들을 내가 제일 친하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게 반복되고, 반복되면 결국 남는건 그런거다. 친하다해도 벽을 치고, 아주 조금만 내 주변인이 평소와 달라도 신경쓰며, 모든 관계가 그릇됨의 이유를 온전히 나에게서 찾는것. 아무리 웃어도 항상 허전하고, 관계는 전부 얕은 관계뿐이며, 언제 자존감 낮은 나를 들킬까 전전긍긍하는거. 당황하면 생각을 거치지 않은 헛소리들이 나오고, 심장이 몸 전체를 흔드는 듯이 박동하며, 숨이 잠시동안 쉬어지지 않으며, 머리가 핑 도는 것. 쓴 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반복되는 말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 뿐인거. 나는 그 지옥을 꼬박 몇년을 반복해왔다. 그러다보면 어느순간 만신창이가 되서 무엇을 해도 만족이 안되는 상태가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내가 조금더 이랬더라면’. 이런 생각들로 밤을 지새우고, 또 스스로 자신을 가장 못난 사람으로 만들고. 아마 사람마다 이런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것이다. 누군가는 험담을 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직접 대면할테고, 누군가는 그 일이 조용히 지나가길 바랄거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라는 말이 틀린건 아니다. 나는 그 잠깐 아픈걸 감당하기 싫어서 계속 무뎌질때까지 입을 다물고 버텼고, 결국 나아지는 건 없었다. 그저, 그 시간동안 나는 아주 조금, 많이 아팠다. 그뿐이다.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주 조금씩, 그 관계들을 전부 다 신뢰와 믿음으로 꼬박 꼬박 다 꼬매내기 전까지는 그 관계는 힘이 없다. 아주 조금만 실수해도 그 꼬맨 자국들이 전부 무용지물로 돌아갈 때가 많다. 하나의 실수가 전부를 다 없애지 않도록, 나는 빈틈없이, 그리고 단단하게 매듭을 짓고, 관계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항상 기억해야 할것은, 이건 내가 혼자서 채워나간다고 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거다. 나와 함께 관계를 형성해나가던 상대방이 어긋내거나 중간에 이어나가는 걸 멈춘다면, 그 또한 관계는 미지수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도 은연중에 알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이어져나간 매듭은, 왠만한 자극이나 방해에도 끄덕없이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관계를 봉제선에 빗대어 말하고 싶다. 한 옷을 봉제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하고, 가끔 가다가 상처가 날 수도 있다. 결국 완전한 옷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한 사람의 인내와 노력, 그리고 종종 상처를 입는 순간에도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치료해낼 수 있는 강인함이 필요하니까. 가끔 그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의 다 만들어놓은 옷을 다 뜯어버릴때도 있고, 잘라낼 때도 있다. 다른 옷감으로 그 빈 곳을 기울 때도 있으며, 아니면 아예 새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가장 좋은 옷은, 봉제 마감이 세심하고 단단하게 되어있는 옷들이다. 그러니까 정말 마음이 맞는 사람이면, 놓치지 말고. 오해가 생기면 회피하는 대신에, 먼저 손 내밀어줬음한다. 그 인연이 정말로 나중에, 아주 외롭고 혼자일때,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따뜻한 옷이 되어 그대를 감싸줄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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