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2월 14일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흔히 커플에게는 발렌타인 데이, 솔로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하루일 뿐이다. 어언 100년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실은 이 날은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의 날이다. 초중 교과서에 항상 보이는 인물인 안중근 의사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다. 아마 이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광복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쉽게 어림짐작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안중근 의사는 더욱이 빛나는 영웅이다.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한다. 당장 내일을 위해 죽으라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는 일제의 침탈이 엄청나게 확대되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후 우리나라를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그곳에서 의군을 조직하고 곧이어 독립군의 참모 중장으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일본의 고위간부를 죽이기 위해 만주역에 매복하고 있었다. 만주의 하얼빈 역 근처에서 한국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하차했을 때 암살을 준비하고 사살했다. 안중근 선생님의 피와 눈물이 담긴 총알 세 발. 그 세 발의 총알들은 이토의 흉부에 한 발, 흉 복부에 한 발, 좌측 복근에 한 발에 박혔다.그리고 이로써 그는 일본에 충분한 위협을 주었다. 또, 남은 총알로 이토의 수행비서 모리 다이지로,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그리고 만주 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와 나카무라 요시히코를 각각 맞추었다. 그래서 총알 한 발을 남긴 채로 그는 러시아 경찰에 붙잡혀 남은 생을 괴로워하며 뤼순 감옥에 갇혀있다 사형을 당했다하셨다. 그는 죽기 전 예비 심문에서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에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하였고,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자신의 이름인 ‘안중근'의 자격으로 그를 쏜 것이 아니라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그를 쏘았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안중근 의사의 손은 다섯 손가락이 다 온전치 않다. 네 번째 손가락의 길이가 새끼 손가락의 길이만큼 짧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며 손가락을 끊었다고 한다. 자신의 신체 부위가 잘려나가는 고통보다 조국을 잃는 고통이 더 심해 그런 맹세를 하였던 것 같다.
만약에 안중근 의사가 그 때 자신을 버리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를 쏘지 않았다면? 만약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포기하고 친일파가 되었다면? 우리가 과연 지금 누리는 것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다 갖춰져있을까? 지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에게 그 때 독립운동을 하겠냐고 하면 자신의 조용히 뒤에서 방관자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많다. 누군가 나서서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안중근 의사는 비록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지만, 선생님이 감옥 안에서 태극기를 펼쳐놓고 왼손 무명지를 자른 뒤 생동하는 선혈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 글자 넉자를 크게 쓰고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불렀던 그 모습은 훗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길 바라셨던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원했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열심히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 나라의 국민이라면 삼일절처럼 2월 14일인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날인 것도 기억해야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