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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고백 데이


인스타 출처: 김나희님

수치로 잴 수 없는 절대적인 것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 우리는 대개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말하며, 누군가는 삶에 있어서 불필요한 매개체라고 부른다. 깊이도, 넓이도, 언제 시작하고 끝나는 지까지, 그런 간단한 것조차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은 가장 잔인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해' 라는 말은 많은 것들을 함축적으로 담아 왔다. 누군가는 다른 이를 미래에 사랑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말 그대로 상대방의 외모를, 성격을, 주변 환경을, 혹은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대를 살아가면서 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게 여겨졌던 단어는 그저 하나의 온점이나 느낌표만큼이나 가볍게 쓰이게 되었다.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한다고 말하며, 사랑이 뭔지 잘 알 수 없음에도 우리는 어쩌면 함부로 쉽게 사랑한다는 말을 상대방에게 전한다.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지금 당장의 만남이 진실된 사랑이라고 믿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변질되어왔고, 그 뜻은 더이상 예전만큼 아릿한 감정을 남기지 않는다.

흔히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은 언제나 두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서로에게 닿았을 때의 절절함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다른 무언가를 가장 아름답고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에 대한 환상을 키워주며, 사랑의 뜻을 조금 더 붉게, 그리고 짙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언제나 소설 속의 신데렐라가 될 수 없듯이 현실의 사랑은 결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사람을 가장 초라함과 동시에 가장 사랑스럽게 만들어 주는 ‘진실된 사랑' 이라는 말을 과연 요즘 세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사랑을 갈구한다. 서로에게 가장 특별하길 원하며, 자신의 마음을 거절당하는 걸 두려워함과 동시에 받아주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로 무지한 사랑을 이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모순적이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더 사랑받고 싶은 동시에 자신이 더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걸 사람들은 티내고 싶지 않아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연애마저도 하나의 경쟁으로 무의식 중에 정의했다. 덜 표현하고 더 사랑받는 것이 이기는 것이며, 더 표현하고 덜 사랑받는 건 지는 거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더 행복하다고는 감히 판단할 수 없다. 대개 짝사랑을 포기하는 이유도, 결국엔 상대의 마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두려움에 미리 끝을 내버리기 때문이다.

SNS 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더욱 쉽게 상대방의 하루를, 혹은 상대방을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피드에서도 우리는 손짓 한번으로 대신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나, 우리는 그걸 정말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며, 그것이 제지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결국 기념일에 기대어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특별한 날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착각하게 해 줄 수 있는, 어쩌면 너무 바빠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어리숙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전략일 수도 있다. 결국 사람들은 사랑받고 싶은 데에는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고, 자신의 존재를 다른 수식어로 더 꾸미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기념일에 기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더욱 자신의 마음을 확실시 하고 싶어한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같은 중립적인 기념일이 아닌, 온전히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날을 원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생겨난 날이 바로 고백데이다. 9월 17일, 크리스마스로부터 딱 100일 전인 이 날은 어느순간부터 고백데이라며 많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날로 지정되었다. 아무것도 아니였던, 그저 일년에 무수히 많은 날들 중 하나였던 날이 갑작스레 기념일이 되고, 그 날로 많은 연인들이 생겨나는 것도 머리로썬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 모든 건 결국 사랑을 하며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요구에서부터 나오게 된 것임을 보여준다.

화자는 결국 사람들이 수치에, 혹은 특별함에 의존하지 않은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런 특별함에는 다른 무수히 많은 물건들처럼 제한기간이 있기 마련이다. 성급한 표현보다는 잔잔한 사랑이, 뜨거운 만남보다는 따뜻한 만남이, 화려하고 달콤한 물건들보단 간단하고 진지한 말 한마디가 가끔은 나비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은 잊으며 사랑하려고 하기에. 사랑을 보장해주되, 보상받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길 원한다. 어쩌면 사랑과 사람이 그저 받침 하나만 다른 데에는 이유가 존재할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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